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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리 사지 1 [산행을 포기하고]

사공(최명규) 2011. 2. 7. 20:59

원래 목적지를 향해

 

 월악산 문수봉을 오르다

시간이 안될 것 같아 산행을 초입에서 포기하고

혼자 미륵리 사지를 찾았다

 

문수계곡 주차장에서 약 2k정도

한동안 춥던날씨가 풀렸다

온도가 올라 그런지 잔뜩 흐린날씨가 하루종일 계속된다

 

차들이 오가는 도로 갓길을 이정표를 보며 걸어서

한참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잔설덥인 뒷산을 배경으로

미륵보살은 알듯 모를듯한 미소를 먹음고 서있다

 

 중 원 미 륵 리 사 지(사적 제317호,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58)에 들어서면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옛 절터의 흔적들 사이로가장 먼저 미륵불상(보물 제96호)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 역사의 기록 속에 나오는 가장 오래된 고갯길이라

알려진 하늘재를 사이에 두고 문경 쪽에는 관음리, 충주 쪽에는 미륵리가 있다.

부처님의 자비로 중생을 구제한다는 관음보살, 부처님의 뒤를 이어

57억 년 후에 나타나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륵불을

만나러 일상의 단조로움을 잠시 접고 충주로 떠난다.

 

수안보온천을 지나 조금만 더 가면 미륵리에 도착하게 된다.

지금은 입구에 식당과 민박집이 남아있는 작은 마을이지만

천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주막과 길손들로 북적거리는 번성한 마을이었으리라

 

 

 

 

 

 

 

 

 

 

 

 

 

 

 

 

이 절터는 몇 차례 발굴조사가 이루어지면서 규모도 밝혀지고,

미륵당(彌勒堂), 원주(院主), 명창3년 대원사주지 승원명(明昌三年大院寺住持僧元明)이라고 적힌 기둥을 비롯하여

명문이 적힌 기와가 출토된 바가 있으며 지금도 이곳의 지명이 미륵리로 되어 있어 미륵대원(彌勒大院)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때는 옹골찬 기개를 자랑하던 중원 미륵리사지는 경주 석굴암을 따라 미륵불상주변에 돌을 쌓고 목조로 지붕을 올린

석굴사원으로 신라 말 고려 초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의 옛 시절을 기억하는 미륵불상은 10m나 되는 거대한 불상으로 1개의 돌에 조각을 한 것이 아니라

화강암 6개를 탑처럼 쌓아올려 만든 석불이다. 검게 이끼가 낀 몸통과는 다르게 하얀 얼굴엔 자애로움이 가득 흐른다.

이와 나란히 석등(지방유형문화재 제19호)과 미륵리오층석탑(보물 제95호)이 자리 잡고 있어 옛 절터의 적적함을 달래주는 듯하다.


  이곳에는 신라의 마지막 임금이었던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麻衣太子)와 그의 누이 덕주공주(德周公主)에 대한 전설이 서려있다.

신라가 망하고 비통함에 잠긴 태자와 공주는 금강산으로 들어가기 위해 먼 길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월악산 기슭에 머물게 된 덕주공주는 덕주사(德周寺)를 창건하여 남쪽 암벽에 마애불을 조성하였고,

태자는 이곳에 석굴사원을 창건하였는데 불상을 북쪽으로 두어 덕주사를 바라보게 하였다고 전한다.
  과연 무엇을 향한 눈빛일까. 멀리 북쪽을 바라보고 있는 미륵에게 물음표를 던지며 왕가의 후손들이 망국의 한을 품고

넘었을 고개,하늘재에서 신라의 마지막 태자와 공주의 흔적을 찾아 그 천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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