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과 상사화속의 다년초. 크론퀴스트체계로는 백합과. 학명인 종소명 'radiata'는 '방사형'이라는 의미의 라틴어이다.
꽃말은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대체적으로는 죽음과 연관짓는 경우가 많아 불길한 징조의 상징으로 보는 경우가 많지만 실상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짝사랑', '열정', '독립', '재회', '체념', '슬픈 추억', '추억은 오직 그대뿐',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림', '이루지 못할 사랑', '죽음' 등이 있으며, 대한민국에선 '슬픈 추억', '죽음', '환생', '잃어버린 기억' 등 긍정적인 의미부터 부정적인 의미까지 다양하다.[위키백과에서]
우리집 뜰에서
특징
유독성의 다년생 구근성 식물. 보통 봄에 심어 9~10월인 가을에 피고 1개월 정도 꽃이 핀다.
산형화 순으로 꽃잎 6장이 방사형으로 붙는다.[3]
비늘줄기에 알칼로이드[4]를 많이 포함한 유독 식물로서 잘못 먹었을 때에는 구역질이나 설사, 심한 경우에는 중추신경 마비로 죽을 수도 있다. 한방에서는 해열, 거담, 통증완화제로 사용하였고 항암 성분도 발견되었다고 하지만 주의해야 할 약재임에는 틀림없다.[5]
마치 바람개비처럼 긴 줄기 끝에 꽃만 달린 모습이 특징이다. 꽃잎이 뒤로 말리고 가장자리에 주름이 지며, 수술이 밖으로 길게 나온 모습인 꽃이 꽃줄기 끝에서 산형꽃차례를 이루며 달린다. 덤으로 열매를 맺지 않으며[6] 번식은 비늘줄기로 한다.[7] 원산지인 중국 양쯔강 유역에 자라는 것은 이배체라 열매를 맺을 수 있지만 한국산은 삼배체라 열매를 맺지 못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절에서 많이 길렀는데, 꽃의 전분을 이용해 풀을 쑤어 탱화 등을 그리는 데 활용하였다. 오늘날에는 더 이상 탱화의 재료로서 석산을 기르지 않지만 여전히 제법 여러 절에서 석산 꽃밭을 가꾼다. 전북 고창군 선운사, 전남 영광군 불갑사, 전남 함평군 용천사 등지에 주요 군락지가 존재한다.[8] 또 아파트 화단이나 도로변, 공원, 학교 등에 조경을 위해 심어놓는 경우가 종종 있기에 간혹 찾아볼 수 있다. 개화철에 석산이 무더기로 만개하면 꽤 화려하니 볼 만하다.
일본에서는 논둑이나 물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논둑에 있을 경우에는 쥐, 두더지, 벌레 따위의 밭을 망치는 동물이 그 둑에 있는 독이 싫어 도망치도록, 물가에서는 벌레를 쫓거나 땅에 묻어 사체를 동물이 쫓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 사람이 직접 심은 것이다. 두더지의 먹이인 지렁이가 석산을 싫어해서 그 주변에 살지 않아 이 꽃 근처에는 두더지가 오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한국과 마찬가지로 절이나, 신사 혹은 높은 산등성이 등에도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이는 구황작물로서 보존해 둔 석산이 야생화/군집화된 것이라는 설이 있다. 전란이 일어났을 때 가장 일반적인 대피처가 사찰이나 산중이었기 때문에, 또한 사찰은 그 자체로 일종의 군벌 세력인 승려들이 모인 곳이라 그 주변으로 석산의 모종이 많이 퍼질 수 있었다는 가설이다.
텐메이 대기근을 상징하는 꽃이기도 하다. 구황작물이라는 설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꽃에 독성이 있지만 구근에 전분이 풍부해 데쳐 먹으면 섭취할 수 있어서 사람들이 닥치는 대로 뽑아 먹었기 때문이라고. 소철지옥 당시 소철의 선배격인 셈이다.
월동이 가능하지만 대신 여름이 무지막지하게 더워서 구근이 단단하게 잘 자라야 월동이 가능하다. 그래서 영국과 같이 여름이 무덥지 않은 곳에서는 온실에서만 겨울을 날 수 있다.
상사화와는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식물이다. 원산지, 크기, 자생 형태, 잎의 모양, 피는 순서도 각기 다르다. 석산은 꽃→잎 순서지만 상사화는 잎 → 꽃 순서로 핀다. 둘은 모두 수선화과 상사화속이지만 종은 상사화와 석산으로 서로 다르다. 쉽게 말하자면 석산은 상사화의 하위 개념이다. 다만 둘 다 잎과 꽃이 함께 있지 못하는 성질이 있다. 자주 상사화로 오인당하는 꽃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광 불갑산 상사화축제. 상사화가 아니라 석산이다. 상사화가 져야 석산이 핀다.
상사화는 잎이 먼저 난 뒤 한두 달 가까이 꽃대가 돋아나고 꽃이 핀다. 반면, 상사화와 닮은 꽃무릇은 반대로 꽃이 진 후 잎이 돋아난다.[위키백과에서]
중앙공원 가을 풍경
정식 명칭인 석산 말고도 아주 다양한 명칭이 있다. 한자문화권인 한중일 공통으로 죽음과 관련 있는 명칭이 많다. 핏빛처럼 새빨간 붉은 빛깔과 먹으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독성 등 성질 때문에 여러모로 죽음을 연상하기 좋은 꽃이었기 때문인 듯. 사인화(死人花), 장례화(葬礼花), 유령화(幽霊花), 지옥화, 면도날꽃, 여우꽃(狐草), 기아화(棄兒花), 꽃무릇, 붉은가재무릇, 노아산, 산오독, 산두초, 야산, 리코리스, 만주사화, 저승화 등등 수많은 이름이 있다.
서브컬처계에서는 일본 문화를 자주 접하기 때문인지 석산, 꽃무릇이란 한국식 이름보다 일본식 이름을 그대로 직역한 피안화(彼岸花)라고 번역되는 경우가 잦았고 해당 명칭이 워낙 널리 퍼지다 보니 석산을 보고 피안화라고 그대로 따라 부르는 경우가 많다.[9] 가을의 피안[10] 무렵에 피는 것에서 유래했다고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피안화의 이명 중에 죽음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보니 현재는 불교의 피안, 즉 저승을 상징하는 의미로 쓰인다. 이에 관련된 설화로는 일본의 텐메이 대기근 당시 다른 모든 것을 다 먹고 독이 있어 먹지 않았던 이 꽃마저 먹은 뒤에는[11]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지옥이 되었다고 하지만 이는 후대에 붙은 이야기인 듯하다.
별명인 '만주사화'는 법화경 같은 불경에서 유래했다. 또 '천상의 꽃'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서로 상반되는 점이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만주사화는 '하얗고 부드러운 꽃'이므로 석산과는 닮은 곳을 찾을 수 없다. 만엽집에 보이는 '한 죽음의 꽃'이 석산이라는 설도 있다.[위키백과에서]
춘추전국시대, 송나라의 폭군 강왕은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워 영토를 확장하는 등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위세를 떨쳤다. 송강왕은 매일 밤마다 수많은 미녀들과 열락에 빠져 간언을 하는 충신들을 모조리 사형에 처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한빙이라는 신하의 아내 하(河) 씨의 아름다움을 듣고 그녀에게 반해 강제로 후궁으로 취했다. 하씨 부인은 놀라며 눈물까지 흘리며 거부했고, 한빙도 피눈물로 읍소했지만 왕은 '네 아내가 스스로 선택한 걸 어쩌리'라는 얼굴색도 바꾸지 않은 거짓말을 하며 외면했다. 절망한 한빙이 왕을 원망하자 그에게 죄를 씌워 멀리 추방했고[13] 한빙은 자결했다.[14]한편 남편을 그리워하던 하씨 역시 남편을 그리워하던 중,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성벽 아래로 몸을 던져 자결했다. 이 소식에 송 강왕은 길길이 날뛰며 분노하는데 죽은 그녀의 소맷자락에는 '왕께서는 저와 사는 것이 행복이겠지만 저는 죽음이 행복입니다. 시체를 부디 남편과 함께 묻어주십시오.'라는 유언이 적혀 있는 걸 읽었던 것이다. 하지만 못된 강왕은 그녀의 간절한 유언을 찢어버린 뒤 그들을 합장하지 않고 오히려 죽어서도 절대 만나지 못하도록 두 무덤을 멀리 떨어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악행을 보던 하늘이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리며 둘을 다시 만나게 하였다. 몇 년 뒤, 두 무덤 위에서 나무가 자라 큰 나무가 되더니 뿌리와 가지가 뻗어 서로 뒤엉켜 연리지가 되었고 한 쌍의 원앙이 서로 목을 비비며 울었다. 그 후 연리지를 상사수(相思樹)라 하였다. 이 상사수에서 핀 꽃이 바로 석산이라고 한다.
옛날에 사이 좋은 오누이가 살았다. 누나가 달을 보며 걷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자, 남동생은 누나를 일으키려고 했다. 그러나 일으킬 수 없어 누나를 꼭 끌어안았다. 둘은 그 때부터 사랑의 감정이 생기기 시작해 날마다 바닷가의 돌 위에 앉아 서로를 끌어안았다. 그것을 본 오누이의 엄마는 놀라며 둘을 떼어놓았다. 둘은 절대 이어져서 안 되는 사이였기 때문이니 신에게 둘을 사랑하지 못하게 해달라 간청했다. 이 간청에 신은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사랑을 하는 남매를 죽여 꽃으로 환생시켰는데 누나는 꽃이 되고 남동생은 잎이 되었다.[15]
일본에는 붉게 타오르는 불꽃을 연상시키는 꽃의 생김새 때문에 '피안화를 집에 가져가면 불이 난다', '피안화 꽃을 꺾으면 집에 불이 난다'는 속설이 있다고 한다. 이 속설은 독성 식물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손대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로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또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전술된 것처럼 묘지나 죽음, 저승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신성한 장소에 피안화를 가까이 두는 것을 금기시하는 경우도 있다.[위키백과에서]
편집을 마치며
추석이 지나도 더위가 계속되고 태풍이 올라와도 그 더위는 식지가 않았는데 9월 20일을 넘기면서 가을날씨로 변하면서 더위는 물러갖다, 그러면서 하늘은 파랗고 뭉게구름이 떠있고 산들바람이 분다, 예년보다 넞게 찾아온 가을이 반갑다, 집 뜰에는 꽃무릇이 피면서 가을이 왔음을 알린다, 날짜를 달리하며 피는 꽃무릇을 기록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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