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로 본 세상

도봉산 망월사 단풍 후편

사공(최명규) 2019. 11. 10. 17:07


포대능선 정상

포대능선 정상에 서 있다

도봉산의 아늑한 품속 다락원능선을따라 오를때부터 느끼는 단풍의 화려함이

망월사를 정면으로 처다보며 가슴이 먹먹함을 느끼며 그대로 서있어 본다

해마다 오는곳이건만 처음보는 신선함이 전해진다

이 풍경을 무슨말로 표현을 할것인지 두렵다

아늑한 골짜기 질서있게 자라잡은 암자들이 단풍숲속에서 진한 가을의 시간에

멈춰저 있다 이 풍경을 보기위해 새벽잠을 설첫다


그리고 포대능선까지 오르는동안도 단풍과 추억까지 바람결에 실려온다

같이했던 많은 사람들, 그 다정한 모습들이 스처 지나간다

그리고 지금은 왜 같이하지 못하는지

손에 잡힐듯한 자운봉 Y계곡을 건너면 신선대로가는데

그곳에 지금도 많이 올라 즐거워하는데 ------,

단풍이 너무 붉은 탓인지 마음은 지난시간을 헤메고 있었다



































































































































































































































도봉산 망월사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 신라 때인 639년(선덕여왕 8)에 해호화상()이 왕실의 융성을 기리고자 창건했다. 절의 이름은 대웅전 동쪽에 토끼 모양의 바위가 있고, 남쪽에는 달 모양의 월봉()이 있어 마치 토끼가 달을 바라보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신라 경순왕(재위 927∼935)의 태자가 이곳에 은거하였다고 한다.

고려시대인 1066년(문종 20) 혜거국사()가 중창한 이후의 연혁은 확실하지 않으나, 여러 차례의 전란으로 황폐해졌다가 조선시대인 1691년(숙종 17) 동계() 설명()이 중건했다. 1779년(정조 3)에 영월()이 선월당()을 세웠고, 1800년에는 선월당을 영산전(殿)터로 이전했으며, 1818년(순조 18)에는 칠성각을 신축했고, 1827년에는 절 전체를 중수했다.

1880년(고종 17) 완송()이 중건한 뒤 1882년 완송이 영산전을 다시 세웠으며, 1884년 인파()가 독성각()을 건립했다. 1885년 완송이 약사전(殿)을 건립했고, 1901년 인파가 큰방을 보수했다. 1906년 회광() 사선()이 선실()과 설법루()를 중수했고, 1941년 김응운()이 약사전을 중건했다.

1969년 주지 춘성()이 퇴락한 선실을 철거하고 2층의 석조 대웅전을 지었으며, 1972년에는 주지 도관()이 본래 있던 염불당과 낙가암()을 헐고 현대식 건물의 낙가암을 새로 지었다. 1986년부터는 주지 능엄()이 대웅전을 헐고 선방, 관음전, 영산전, 요사채를 신축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석조전(殿)을 비롯하여 영산전·칠성각·낙가암·선원· 범종각·요사채·범종루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망월사혜거국사부도(경기도 유형문화재 122)와 천봉 태흘(:1710∼1793)의 부도(경기도 문화재자료 66), 1793년에 세운 태흘의 천봉탑()과 1796년 수관거사()가 명()한 망월사천봉선사탑비(경기문화재자료 67)가 있다.

이밖에도 부도 1기와 탑다라니판() 1매, 위안스카이[]가 1891년 이 절을 유람하고 쓴 망월사 현판, 영산전 전면에 걸려 있는 주련() 4매 등이 있다. 이 사찰에 관한 옛 기록에는 천봉선사탑비문과 신수망월사기선실설법루기가 있다.

망월사에서 30km 떨어진 곳에 광법암()이라는 부속암자가 있는데 원래 영산전 앞에 있던 것을 1965년 지금의 자리로 옮긴 것이다. 망월사는 명승들을 많이 배출하여 경기 지방의 이름 있는 선() 사찰로 유명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망월사 [望月寺]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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