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일상다반사

부천 문화 둘레길 2 (3코스 소사내음길) 정지용 거리

사공(최명규) 2021. 8. 15. 15:34

소사 내음길을 걷고

부천에 오래살고 오레전부터 북한산과 그 둘레길은 물론 멀리 지리산 둘레길도 완주하고 평화누리길도 행사때마다 참석하며 가끔은 서울 둘레길 양평 물소리길 등 다니고 있는데 부천 문화길은 근래와서 접한다, 더구나 3코스 소사내음길은 집에서 도보로 출벌선에 설수있는 가장 가까이 있는 길인데 이제야 만나 걸어 보았다, 여러 약수터를 지나고 성주산 기슭을로 가는길, 한풀꺽인 여름이지만 덥고 습하다 마스크가 입을 막고있어 참으로 불편한데 코로나19 하루확진자가 2000명를 오르내리니 답답한 하기만 하다, 그렿게 정주용의 향수길에 선다, 산과 동래를 불리하는 벽에 세겨진 시인의 흔적에 닦아서지만 주차된 차와 무성한 잡초때문에 설치한 취지가 무색해진것 같아 아쉽고 화가난다 긴 벽에 이렇게 많은 작품이 전시됬는데 어느 한곳도 관리되는것 걷지않아서 제대로 감살 할 수 가 없다, 우리끼리지만 화난 목소리로 요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데 이렇게 버려두어야 하느냐고, ---------?  어떤곳은 침구류등 집기를 벽에다 세워놓아 작품을 가리는데 한목한다 이런 불합리가 합리화되는 날을 고대해 본다 

정지용

고향에서 초등 과정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 휘문고등보통학교(徽文高等普通學校)에서 중등 과정을 이수했다.

그리고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京都]에 있는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귀국 후 곧바로 모교인 휘문고등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8·15광복과 함께 이화여자대학교 문학부 교수로 옮겨 문학 강의와 라틴어를 강의하는 한편, 천주교 재단에서 창간한 경향신문사의 주간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슨 까닭인지 확인된 바 아니나, 이화여대 교수직과 경향신문사 주간직은 물론, 기타의 공직에서 물러나 녹번리(현재 은평구 녹번동)의 초당에서 은거하다가 6·25 때 납북된 뒤 행적이 묘연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 최근 평양에서 발간된 「통일신보」(1993.4.24., 5.1., 5.7.)에서 가족과 지인들의 증언을 인용해 정지용이 1950년 9월경 경기도 동두천 부근에서 미군 폭격에 의해 사망했다는 사실을 보도하기도 했다.

정지용의 행적에 대한 갖가지 추측과 오해로 유작의 간행이나 논의조차 금기되다가 1988년도 납·월북작가의 작품에 대한 해금 조치로 작품집의 출판과 문학사적 논의가 가능하게 되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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