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일상다반사

굴포천을 따라 계양 꽃마루까지[2021,09,26,]

사공(최명규) 2021. 9. 27. 18:26

부평구청역 3번출구에서 청파와 만나 굴포천을 따라 걷는다 목적지는 계양 꽃마루에 코스모스를 만나러 간다,전형적인 가을날씨가 기분을 상쾌하게하고 발걸음은 가볍다

인천광역시 부평구 만월산에서 발원하여 인천광역시 계양구경기도 부천시서울특별시 강서구를 거쳐 경기도 김포시 고촌읍 신곡리에서 한강과 합류하는 한강의 지류인 하천이다.

2016년까지는 지방하천이었으나 2017년 1월 국가하천으로 승격되었다. 갈수록 개판이 되어가는 굴포천 개선을 위한 의지라고. 냄새가 심했다고 하더라...

이 하천의 지천은 산곡천, 세월천, 청천천, 동수천, 목수천, 들내, 삼정천, 계산천, 여월천(지류로 고리울천, 베르네천, 오쇠천이 있다.), 귤현천 등이 있으며 양 옆에는 농수로로 쓰이는 간선천이 흐른다. 역사적으로 ‘굴포(堀浦)’라는 말은 ‘판개울’을 한문으로 표현한 말로서, 인공으로 팠다는 의미가 이름에 포함되어 있다. 옛날에 삼남지방에서 정부에 바치는 곡물(삼남미)를 싣고 바다를 통해 강화 손돌목(오늘날 강화도와 김포 사이의 해협. 더 자세히는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에서 강화군 광성보 사이에 있는 좁은 해협)을 거쳐 한강을 거슬러 올라가 용산으로 옮겨왔다. 그런데 손돌목이라는 곳이 바다밑에 사슴뿔같은 암초가 많아 배들이 자주 조난을 당했다고 한다.

고려 고종때 최충헌의 아들 최이(=최우)는 사람이 이 위험한 손돌목을 피하기 위해 부평 만월산 칠성약수터에서 발원해 부평벌을 가로질러 한강으로 흐르던 하천을 개조하고, 인천 제물포 쪽과 연결해 배가 다닐 수 있는 수로개설을 시도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300년 뒤인 조선 중종 때 김안로가 최이의 계획대로 하천을 파기 시작했지만 원통이고개를 뚫지 못했다고 한다. 그때 뚫지 못한 곳이 간석동 일대이고 그 때 판 하천이 지금의 굴포천이다. 그 때의 이름들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서해 바다를 지척에 두고 더 나아가지 못한 굴포천의 서쪽 끝 인근의 암석 산이 바로 원적산이다. 경인운하를 굴착하는데 원적산 남쪽의 원통이고개를 파도 암석이 나와 실패하고, 원적산 북쪽의 아나지고개를 파도 암석이 많아 실패를 하자 원통하고 원한이 맺힌 산이라고 해서 원적산(怨積山)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그런데 후대 사람들이 이것을 원적산(元積山)으로 고쳐 쓴 것이라 전한다. 또한 인근의 현재의 만월산의 옛 이름 중 하나가 원통산이다.

참고로 원통이고개는 오늘날의 부평삼거리역 부근이다. 원통이고개라는 지명 때문에 부평삼거리역이 아닌 원통역으로 개통할 뻔 했지만 어감이 좋지 못하다고 해서 오늘날의 역 이름을 갖게 됐다.

2021년부터 복원공사를 시작했다. 해당기사에서 굴포천과 복개된 지류의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위키백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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