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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 따라걷기 (응봉역 ~ 서울 시청역) 2,사진

사공(최명규) 2024. 1. 29. 15:34

중랑천(中浪川)은 한강의 여러 지류 중 하나로 경기도 양주시 양주동에서 발원하여 경기도 의정부시를 거쳐 서울특별시 성동구 금호동 성수동 강변북로 교량 아래에서 한강과 합류하는 대한민국 국가하천이다.

하천연장은 37km이며, 최대너비는 150m이고 유역면적은 288km2이다. 경기도 서울특별시의 경계 부분은 서원천(書院川)이라 하고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倉洞) 부근에서는 한천[漢川]이라고 한다. 서울특별시의 시계 밖을 흐르는 부분 700m를 제외하고 서울특별시의 직할하천으로서는 19.3km이다.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동(里門洞) 부근에서는 중랑천과 중랑개[中浪浦]가 되어 계속 남류하다가 장안교(長安橋)와 군자교(君子橋)를 지나서 청계천(淸溪川)과 만나 서쪽으로 꺾여 한강으로 들어간다. 청계천, 도봉천(道峰川), 우이천(牛耳川) 등의 지류가 있다. 옛날에도 청계천과 중랑천의 하천오염이 심하던 모양으로 서빙고(西氷庫)에서 하던 채빙(採氷)을 두모포(豆毛浦:현재 玉水洞) 쪽으로 장소를 옮겼다는 기록이 있다. 1979년에 중랑천 하수처리장이 건설되었다.[위키백과에서]

청계천(淸溪川)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내부에 있는 지방하천으로, 한강 수계에 속하며 중랑천의 지류이다. 최장 발원지는 종로구 청운동에 위치한 ‘백운동 계곡’이며,[2] 남으로 흐르다가 청계광장 부근의 지하에서 삼청동천을 합치며 몸집을 키운다. 이곳에서 방향을 동쪽으로 틀어 서울의 전통적인 도심지를 가로지르다가,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 옆에서 중랑천으로 흘러든다.

발원지에서부터 잰 본류의 길이는 10.92 km, 유역 면적은 50.96 km2이나, 백운동 계곡 언저리를 제외한 상류 2.50 km 구간은 일제강점기 이래 전면 복개되어 타 용도로 전용되는 등 사실상 하천의 기능을 상실하였다. 현재는 서울 이곳저곳에서 취수한 물을 중류의 청계광장에서 하루에 40,000 세제곱미터씩 인공적으로 방류하는 형태로 하천을 유지하고 있다.

발원지의 계곡은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청계광장에서 중랑천 합수머리까지의 중·하류 8.12 km[3] 구간은 서울시설공단의 관리 하에 공원으로 쓰인다.[위키백과에서]

 

현재의 다리[편집]

조선시대의 다리를 계승한 경우 굵은 글씨로 표시하였다.

  • 모전교: 청계천에서 처음 만날 수 있는 다리로, 무교로를 남북으로 잇는다.
  • 광통교: 복원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돌로 만든 것이 아니라 그 역사적 의미를 기념하기 위해 기존에 남아 있었던 돌을 다리와 석벽에 같이 배치를 하여 재조합하여 만들었다. 1958년 청계천 복개와 함께 도로 밑에 묻혔던 것(광교네거리 지하)을 청계천 복원과 함께 복원하였다. 그리고 사적 제 461호로 지정했으며, 표지석을 세워 두었다.
  • 세월교: 광교와 광통교 사이에 있는 하천 내부 보도용 다리이다.
  • 광교: 조선시대 광통교 터에 위치하며, 주황색으로 칠해졌다. 우정국로와 남대문로를 남북으로 잇는다.
  • 장통교: 도보 전용 다리로, 조선 시대의 장통교를 계승했으나 제대로 복원되지는 않았다. 공사 당시 임시 명칭은 관철교였다.[32]
  • 삼일교: 삼일대로를 남북으로 잇기 때문에 삼일교라고 이름 붙였다.
  • 수표교장충단공원에 옮겨진 옛 수표교를 옮길 자리에 도보를 위해 임시로 지은 철제 다리이다. 하지만 기존의 수표교를 청계천으로 다시 옮겨오는 데에 문제가 많아 계속 사용된다.
  • 관수교: 관수란 수위를 관찰한다는 의미며, 옛 준천사에서 청계천의 수위를 관측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돈화문로와 충무로를 남북으로 잇는다.
  • 세운교: 세운상가와 연결된다는 의미로 지어진 이름이다.
  • 배오개다리: 옛날 배나무가 심어져 있어 이름이 유래된 배오개(배고개)가 인근에 있어 그 이름을 땄다. 창경궁로를 남북으로 잇는다. 공사 당시 임시 명칭은 배오개교였다.[32]
  • 새벽다리: 옛 재래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천막의 이미지를 막구조로 적용하여 동대문 재래시장의 역사성과 향수를 연출하였다. 근처 재래시장에서 이른 새벽에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기 때문에 상징적으로 이름을 지었다.
  • 마전교: 부근에 우마를 팔고사는 마전이 조선시대에 있었기 때문에 이름을 붙였다. 동호로를 남북으로 잇는다. 공사 당시 임시 명칭은 창선방교였다.[32]
  • 나래교: 평화시장 앞에 위치한 다리로, 나비의 힘찬 날개짓을 형상화 해서 동대문 의류 상권이 비상하라는 의미를 담았다. 공사 당시 임시 명칭은 나래1교였다.[32]
  • 전태일다리(버들다리): 청계천에 자라는 버들에서 이름이 유래했으며, 이 다리 근처에서 분신하여 노동권 보장에 헌신한 전태일 열사를 기리기 위하여 2012년 11월 1일부터 명칭을 병용하고 있다.[33]
  • 오간수교: 조선시대에 있던 오간수문에서 이름이 유래했으며, 율곡로와 장충단로를 남북으로 잇는다.
  • 맑은내다리: 인도 전용 다리로, 청계천을 순우리말로 바꿔 청계천을 상징할 수 있는 명칭으로 결정했다. 패션 중심의 상징성을 주기 위해 나비가 날개를 편 모습으로 지어졌다. 공사 당시 임시 명칭은 나래2교였다.[32]
  • 다산교: 다산로에서 이름이 유래하였으며, 지봉로와 다산로를 남북으로 잇는다. 공사 당시 임시 명칭은 푸른내다리였다.[32]
  • 영도교: 전통 대청양식을 도입한 아치교이다.
  • 황학교: 황학동에 위치한 것이 그대로 이름이 되었으며, 난계로를 남북으로 잇는다.
  • 비우당교: 조선 세종 때 청백리인 하정 류관의 집인 비우당(庇雨堂)을 이름으로 삼았으며, 하정로와 마장로19길을 남북으로 잇는다. 공사 당시 임시 명칭은 비우교였다.[32]
  • 무학교: 무학로를 남북으로 이으며, 무학로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 두물다리: 정릉천이 청계천과 만나는 데서 이름을 지었으며, 다리의 모양도 두 개의 물이 만나는 형상을 이뤘다.
  • 고산자교: 고산자로를 남북으로 이으며, 고산자로에서 이름이 유래했다.
  • 신답철교: 중앙선의 철교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마장동철교, 청계천 복개 당시에는 마장철교로도 불렸다.
  • 제2마장교: 마장로를 남북으로 이으며, 서쪽과 동쪽에는 각각 마장역과 신답역이 있다.
  • 사근인도교: 용답역의 2번 출구로, 청계천 건너의 사근동과 용답동을 잇는 데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 세월교: 청계천이 중랑천과 합류하기 직전 지점에 위치한 성동구 사근동과 용답동을 잇는 자전거와 보도용 다리이다. (상류의 세월교와는 다르다.)[위키백과에서]

어떤 분이 일부러 모이를 준비해와 뿌려주자 오리들이 신나게 먹는다

청계천 시점에 도착하기 전부터 시끄러운 소음이 들리는 듯 하더니 시청역 으로가는 길에 광화문 광장의 난잡한 풍경들과 마주한다, 서울 한복판이 썩어 문들어 젖다,여기에 외국사람이 이 풍경을 보고, 이것이 자유라고 생각할까? 궁금하다,? 여기있는 사람 모두 애국자라 생각하지 않는다,이것은 진영논리고 나는 살아야 되고 너 는 죽어야 된다는 극단적인 논리다, 그 것으로 어떤 결론을 원하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거리에서 문제를 고함으로 해결 하려는 발상, 미개인들의 소행이다, 누구를 막론하고 나라에 누가 되는 일은 해서는 안된다고 배웠다, 그 것을 무조건 실천해야만 한다, 그래서 조용하고 아름다운 서울, 그 심장인 광화문 광장을 그렇게 유지해야 한다, 이곳을 방문한 외국사람들께 부끄러운줄 알아야 한다, 깃발을 든 사람도 단상에서 마이크를 잡은 사람도 똑갇이 나라, 먹칠에 공범, ?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점 알았으면 촣겠다고 잠깐 지나치면서 진심으로 희망해 본다.

편집을 마치며

2024,01,28. 그동안 매습게 춥든 날씨가 조금 풀려 부부 나들이를 하기로 했다, 중량천에 원앙이 많이 왔다는 뉴스 때문이다, 몇일이 지났지만 기대를 하고 응봉역에 도착했지만 원앙은 보이지 않고 다른새들은 많았다, 원앙과 놀다 뚝섬 유원지를 돌아 귀가하가로 했든 일정을 수정해서 청계천으로 거슬러 올라기 서울 시청역에서 전철을 타고 귀가하자고 다시 약속하고, 중량천에서 청계천으로 방향을 잡고 가는 길가 숲에서 토끼도 만나고 청둥오리도 많이 만나고 오랬만에 걷는 청계천길 에서 즐거운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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