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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파평산 산행 (2024,01,30,) 2,사진

사공(최명규) 2024. 1. 31. 18:56

파평산 기슭에는 사철 내내 서슬 푸른 기운이 넘쳐나는 연못이 있다. 신라 진성왕 7년(893년)에 파평윤씨 시조 윤신달이 탄생했다는 설화가 깃들인 파평용연이다. 이 고장에 터를 잡은 후손들은 윤관장군을 필두로 수많은 나라의 동량을 배출했다. 게다가 1459년에는 세조가 정희왕후(파평윤씨)의 친정이 있는 고을이라 하여 ‘원평도호부’를 ‘파주목’으로 승격시켰다. 그때까지 종3품 도호부사가 다스리던 원평도호부가 정3품 목사가 다스리는 파주가 된 것이다. 그런저런 사연들로 추론해 본다면, 파평산이야말로 파주의 뿌리 아니겠는가.

눌노리 파평체육공원에서 100m쯤 직진하면 ‘파평산토지지신’ 비석이 반겨 맞는다. 등산로 1코스, 2코스, 3코스의 출발점이다.
첫 산행은 봄기운이 땅거죽을 간질이는 2월 하순. 골짜기 초입에서 만난 사방댐이 낯설었다.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양쪽 산허리를 꽉 문 채로 버티고 서있었던 것. 그 어떤 홍수나 산사태가 닥쳐와도 기어이 막아내겠다는 결의가 엿보였다.
사방댐의 내력을 적은 안내판을 에돌아 오르니, 1코스 계곡길과 2코스 능선길이 갈라지는 삼거리였다. 바위에 등을 기대고 쉬던 산객을 만났다. 장파리에 사는 성혼선생 후손이라고 자기소개를 하더니, 1코스 계곡길로 앞장을 섰다.[파주 홈페지에서]

차에서 내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길가에 돌탑이 많이 있다, 공동묘지를 등지고 산으로 오른다, 길어도 돌이 많이 딩굴고 있다, 그늘쪽으로 오니 덜 녹은 눈이 아직 겨울임을 말하는 듯 하지만 날씨는 풀려 쌀쌀한 봄날 같았다,

남아있는 눈을 밟으며 걷는다,벌써 오늘이 1월 마지막 날이다, 그리고 오늘이 첫 산행인 것이다,뽀드득그리는 눈을 밟으며 묘한 즐거움을 느낀다, 그래서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풍경을 찾아나선 것은 아니지만 뜻밖에도,차평산에서 만난 이 풍경은 오래토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출입이 허용된 동봉 정상(479m)이 빤히 올려다 보이는 곳에서 시야가 확 트였다. 오른편으로 모형 미사일이 서 있는 중봉(449m)과 군부대가 자리 잡은 서봉(495.9m)이 한눈에 잡혀왔다.
마지막 계단 위에는 정상표지석과 산불감시초소가 나란히 서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정상표지석부터 카메라에 담았는데,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성혼선생 후손이 해설을 달았다.
“저 건너 서봉이 진짜 파평산 정상이지요. 거기를 군부대가 차지하고 있으니, 여기에 495.9m짜리 가짜 정상표지석을 세워서, 등산객들 증명사진을 박게 해주자는 배려라고나 할까요.”
전망은 빼어나서 임진강 건너로 북한의 기정동마을, 개성공단, 송악산, 닭벼슬봉 들이 주르르 달려들었다. 누가 이 아름다운 강산을 갈라놓았단 말인가. 감탄과 원망이 교차하는 사이, 성혼선생 후손이 감시초소 뒤쪽으로 이끌었다.

“전망이라면 이쪽도 빼놓을 수 없지요. 중봉과 서봉은 물론, 비학산 감악산 고령산 북한산까지 한 줄로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기, 양쪽 벼랑 사이로 중봉까지 쫙 뻗어간 좁다란 능선이 주마대랍니다. 파평윤씨 시조 윤신달이 말을 훈련했다는 치마대는 저 건너 서봉 어딘가에 있겠지만, 아쉬운 대로 이곳 주마대도 그럴듯하지 않습니까.”
성혼선생 후손의 해설이 느닷없이 주마대를 내달려 50여 년 전으로 훌쩍 건너뛰었다.
“여기까지 올라오는 길은 덕천리 쪽 4코스와 법원읍 웅담리에서 올라오는 군사도로가 더 있지요. 1968년 1월 하순, 개성에서 출발한 북한 무장공비 31명이 얼어붙은 임진강 고랑포를 건넌 뒤 곧바로 파평산으로 올라붙었다고 해요. 저 아래 타이거CC 옆 포수바위, 등산로 4코스, 군사도로를 통과해서 비학산으로 건너갔다지요. 그들은 파평산 비학산 삼봉산 노고산 팔일봉 고령산 북한산비봉을 거쳐 자하문까지, 30kg 완전군장을 갖추고 평균시속 12km로 내달렸답니다. 청와대를 까겠다고 말이지요.”
털어놓자면 끝도 없을 사연을, 마주보고 고개 끄덕이며 줄였다.[파주 홈페지에서]

위 사진 지붕만 보이는 곳

6.25전쟁 때 전소된 절터에 복원은 했으나, 여건은 옴치고 뛸 수 없는 신세였을 것이다. 차량이든 사람이든 웅담리 쪽 군사도로 입구에서, 군부대 허락을 받아야만 통행이 가능했다. 비켜갈 길조차 마땅찮은 좁고 가파른 언덕으로 차를 몰아야 하는 모험은 필수조건이었다. 신도가 늘어날 까닭이 없고, 시줏돈 모일 리도 없었다.
마당 귀퉁이에 눈비 맞고 널려있는 탑이며 돌부처도, 제자리를 잡지 못한 채 엉거주춤 서있는 꼴이었다. 그나마 탑 앞의 부도 하나가 수백 년 세월을 삭힌 보물일 듯싶었지만, 진가를 헤아릴 도리는 없었다.[파주 홈페지에서]

편집을 마치며

청파님으로 부처 전날 제녁 넞게 전화가 왔다, 네일 뭐하냐고 ?, 별볼일 없다고 대답하고 약속한 일정이다,작전역 4번 출구에서 8시 30분 서장환씨의 승용차로 목적지로 출발했다, 금촌역에서 청파님 친구 태우고 4명이서 파평산 산행 출발점에도착 해서 준비하고 산행이 시작된다, 오르다보니 응달에는 덜녹은 눈이 많아 조심 또 조심한다, 즐겁게 눈밭에서 덩굴어도 보고 넘어저도 보고 아직은 겨울 산행임을 실감한다, 칼날같은 정상에서서 내려다 보는 풍경에 마세먼지가 방해했지만 산행을 무사히 마치고 메기 메운탕으로 넞은 중식을 하고 귀가하는데 세울쪽에서 퇴근시간과 겹치는 바람에 길어서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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