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세상/산행 사진

북한동 계곡 4

사공(최명규) 2014. 8. 26. 16:42

산영루

 

북한산성산영루지(北漢山城山映樓址)는 북한산성내 중흥사 앞에 위치해 있는 조선후기의 누정이 있던 터이다.

태고사 계곡과 중흥사 계곡이 만나 합수되는 지점의 연못가에 위치하며, 산그림자가 수면 위에 비치는 곳이라 하여

산영루(山映樓)라 이름붙였다. 산영루의 첫 건립시기는 알 수 없으나 최소 고려말 이전시기인 것으로 보인다.

선조 36년(1603년) 이정구의 ‘유삼각산기’의 기록으로 보아 17세기 이전부터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산영루는 북한산성의 중심부에 위치하며, 팔도도총섭이 자리한 중흥사 앞 계곡가에 세워져 있는데,

‘凸’자형의 평면구성을 하고 있는 정교한 건물로서 뛰어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고 전한다.

특히 북한산과 산영루를 유람하고 기록을 남긴 사람들만도 허목, 송상기, 이익, 이중환, 유광천, 이덕무, 이옥,

 정약용, 김정희, 이계서, 신기선 등 이루헤아릴 수 없이 많다. 특히 추사 김정희와 다산 정약용, 성호 이익과 청담

이중환 등 조선 명사들의 흔적과 문향들이 많이 남아 있다. 시회의 장소로서 산영루는 몇 번의 중수를 거쳤는데

현재는 1915년과 1925년 홍수로 누각은 사라지고 초석 10매만이 남아 있다.
 

 

 

 

 

 

 

 

 

 

 

 

 

 

 

 

 

 

 

 

 

 

 

 

산영루(山映樓)

산영루는 태고사 계곡과 중흥사 계곡이 만나 합수되는 지점의 연못가에 있으며, 산그림자가 수면 위에 비치는 곳이라 하여

산영루(山映樓)라 이름붙였다. 산영루의 시초는 고려시대때 중흥사와 연관된 누각으로 추정된다.

또한 조선시대때 북한지에 폐지 기록으로 보아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에 접어들어 1717년 승 성능이 건립한

 항해루(抗瀣樓 : 이슬기운을 막아내는 누각) 와 함께 북한산과 북한산성, 항해루(현 산영루)는

유학자들에게는 빠트릴 수 없는 유람의 대상지가 되었다.


월사 이정구(月沙 李廷龜 1564~1635)의 월사집(月沙集)에 유삼각산기(遊三角山記)에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 산영루 옛터로 걸어갔고

내친김에 향옥탄을 찾았다라고 하였다

(早起步下山映樓舊址 仍訪響玉灘)라고 쓰어있습니다.

1600년대 당시 산영루는 옛터만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711년 북한산성을 축조한 이후 북한지의 루관편을 보면


樓觀(루관)

1)沆瀣樓(항해루)[현 산영루] -

在中興寺洞口(재중흥사동구) 跨溪(과계) 有偃龍橋(유언용교) 上(상) 建二層樓(건이층루) 僧(승) 聖能(성능) 所創(소창)

중흥사 계곡입구에 있다(현 용학사 부근). 계곡을 건너가면 언룡교가 있다. 언룡교 위쪽에 2층 누각을 만들었다. 승 성능이 창건했다.


2)山影樓(산영루)[구 산영루] -

中興寺前(중흥사전) 舊(구) 有小橋(유소교) 覆以閣(부이각) 卽此樓(즉차루) 今毁(금훼).

중흥사 앞에 옛날에 작은 다리가 있었다. 다리위에 지붕을 덮고 누각을 만들었는데 바로 이 누각이였다. 지금은 헐리었다.


산영루는 예전에 헐리었고 그래서 승 성능이 항해루를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이 항해루를 산영루라고 부른 것으로 보입니다

이 산영루가 예전부터 꽤 유명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헐리어 없어진 산영루를 추억하며 새로 지워진 항해루를

사람들이 산영루라 부른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정유년(숙종 43년, 1717년) 옥오재 송상기의 『옥오재집』「유북한기」에는 ‘중들이 산영루를 중수하였고 단청칠이 이제 막 끝났다.

라는 내용으로 보아 산영루는 이미 헐리고 없어져서 승 성능이 1717년경에 항해루를 창건할 때 유생들은 이를 산영루로

 알고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백과사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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