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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방문 1박2일 3 수승대

사공(최명규) 2022. 10. 12.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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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승대

 

위천면 황산리 황산마을 앞 구연동에 위치한 수승대는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였고 조선 때는 안의현에 속해 있다가 일제 때 행정구역 개편으로 거창군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승대는 삼국시대 때 백제와 신라가 대립할 무렵 백제에서 신라로 가는 사신을 전별하던 곳으로 처음에는 돌아오지 못할 것을 근심하였다 해서 근심 수(愁), 보낼 송(送)자를 써서 수송대(愁送臺)라 하였다. 수송대라 함은 속세의 근심 걱정을 잊을 만큼 승경이 빼어난 곳이란 뜻으로 불교의 이름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 후 조선 중종 때 요수 신권(樂水 愼權)선생이 은거하면서 구연서당(龜淵書堂)을 이곳에 건립하고 제자들을 양성하였고 대의 모양이 거북과 같다하여 암구대(岩龜臺)라 하고 경내를 구연동(龜淵洞)이라 하였다. 지금의 이름은 1543년에 퇴계 이황(退溪李滉)선생이 안의현 삼동을 유람차 왔다가 마리면 영승리에 머물던 중 그 내력을 듣고 급한 정무로 환정하면서 이곳에 오지는 못하고 이름이 아름답지 못하다며 음이 같은 수승대(搜勝臺)라 고칠 것을 권하는 사율시(四律詩)를 보내니 요수 신권선생이 대의 면에다 새김에서 비롯되었다.

 

경내에는 구연서원(龜淵書院) 사우(祠宇) 내삼문(內三門) 관수루(觀水樓) 전사청(典祠廳) 요수정(樂水亭) 함양제(涵養齊) 정려(旌閭) 산고수장비(山高水長碑)와 유적비(遺蹟碑) 암구대(岩龜臺) 등이 있는데 이는 유림과 거창신씨 요수종중에서 공동 관리하고 있으며, 솔숲과 물과 바위가 어울려 경치가 빼어나고 또한 자고암과 주변에는 고란초를 비롯한 희귀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거창 수승대(居昌搜勝臺))]

<거창 수승대관광지의 요수정(樂水亭)>

지정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23호

소재지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766.

요수정은 요수 신권(樂水 愼權, 1501~1573) 선생이 풍류를 즐기며 제자를 가르치던 곳으로 1542년 구연재와 남쪽 척수대 사이에 건립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그 뒤 다시 수해를 입어 1805년 후손들이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요수선생은 조선시대 유학자로 학문에 뜻이 깊어 널리 성현을 찾아 배웠으며 벼슬을 멀리하고 안빈낙도에 힘썼다. 돌아가신 뒤에는 구연서원에서 배향(配享)하고 있다.

 

요수정(樂水亭)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자연암반을 그대로 초석으로 이용하였다. 정자의 마루는 우물마루 형식이고 사방에 계자난간을 둘렀다. 종보가 있는 5량 가구로 가구의 짜임이 견실하고, 추녀에는 정연한 부채살 형태의 서까래를 배치하여 세부장식에서 격조 높은 정자건물의 양식이 잘 반영되어 있고, 특히 추운 산간지역 기후를 고려하여 정자 내부에 방을 놓는 등 지역적 특성이 잘 반영된 거창 지역의 대표적 문화재이다.   --현지 안내문--

거창 수승대(居昌搜勝臺)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에 위치한 명승지(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890번지)

 

거창 수승대는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에 있는 영남 제일의 동천(洞天)주 01)으로 알려진 ‘안의삼동(安義三洞)’ 중 하나로 원학동 계곡 한가운데 넓은 화강암 암반으로 이루어진 계곡이다. 이곳은 암반 위를 흐르는 계류와 숲이 어우러져 빼어난 자연경관을 이루고 있어 2008년에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수승대는 이곳이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었던 관계로, 신라로 가는 백제 사신들이 수심에 차서 송별하는 곳이어서 수송대(愁送臺)라 불렸다고 한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이곳의 풍경을 예찬하는 시를 한 수 읊은 뒤부터 수승대(搜勝臺)로 그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수승대에는 거북바위를 비롯해 요수정(樂水亭)과 관수루(觀水樓)가 아름다운 계류와 함께 어우러져 있다. 주변에는 구연서원과 원각사 등이 자리하고 있어 문화경관으로서의 가치도 크다. 수승대의 하부에는 보가 설치되어 하천의 일정 구간이 못으로 형성되어 있다.

수승대에는 그 명칭이 유래된 퇴계 이황의 개명시와 관련하여 갈천(葛川) 임훈(林薰)의 화답시가 전한다. 거북바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특히 거북바위에 새겨진 글 중에서 누구의 장수지대(藏修之臺), 장구지소(杖屨之所)라 한 것은 그가 이 동천의 주인임을 명확히 표시하고자 한 각자라고 한다.

ㅇ----수승대----ㅇ

           최 명규


낙옆이 바위 위를 구르고
노송은 겨울채비에 바쁘고
물살은 속내를 보이며 웃음 짓는다.


천년의 세월이 바람에 날려
이끼낀 담벼랑에 서성이고


바위를 감도는 물줄기는
도도한 세월을 말하지 않이 하고
쓸쓸한 초 겨울의 외로움에 떤다


빛나든 세월에 씻기우고
흐름에 역류하지 못 한 체


거북바위에 이름만 세겨 놓고
가버린 향도의 사람들이
어찌하여 돌아오지 못하는지


천년 노송은 오늘도
거북 바위를 감도는 맑은 물을
굽어 보고 있는데.


       아침 산책에서
            2003,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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