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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방문 1박2일 4 감악산 연수사와 하림동 계곡 농월정

사공(최명규) 2022. 10. 12. 13:55

https://tv.kakao.com/v/432679916

■ 거창 감악산 연수사(居昌 紺岳山 演水寺)개요 :

  연수사는 감악산 무촌리에 위치하며 감악산(951m)기슭에 있는 절이다

신라 애장왕(서기788~809) 3년(서기802년)에 감악조사가 현 사찰 위치에

절을 세우려 하였던바 구전에 의하면 다듬어 놓은 서가래 재목인 큰 통나무가

한밤에 없어져서 그 다음날 찾아보니 현 사찰 대웅전 자리에서 발견된 연유로 하여

초기 계획을 바꾸어 현 사찰대지에 건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연수사는 이조 숙종 시 벽암선사(서기1575~1660)가 사찰을 중수하고

또 십여 사원을 지어 불도를 크게 일으킨 절 이기도 하다.

 

 

연수사 일주문(演水寺 一柱門)  

편액에는 紺岳山 演水寺(감악산 연수사)라고 걸여 있다

본래 일주문이라는 말은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는 데서 유래된 것으로

사주(四柱)를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 일반적인 가옥형태와는 달리

일직선상의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형식으로 되어 있다.

사찰에 들어가는 첫번째 문을 독특한 양식으로 세운 것은 일심(一心)을 상징하는 것이다.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다.

연수사 일주문 주련에는 入此門來莫存智解(입차문래막존지해) 라고 되어 있는데

이문을 들어서거든 세상의 알음알이를 두지 말라 라는 뜻이라고 한다.

연수사 은행나무

일주문 바로 옆에 있는 은행나무인데 크기가 어마어마 하다.

은행나무는 경상남도 기념물 제124호. 한 그루의 노거목으로

거창읍 남서쪽에 위치한 감악산 북쪽의 해발 800m 지점에 있는 연수사(演水寺) 경내에 자라고 있다.

나무의 높이는 38m, 가슴높이 줄기둘레는 7m, 수관폭은 동서로 21m,

남북으로 20m에 이르며, 나무의 나이는 약 600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고려왕족에 혼인을 한 여인이 고려가 멸망하여 아들과 함께 속세를 떠나 연수사로 들어와

심은 것으로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애틋한 그리움과 모정이 묻어 있다.

지금도 아들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친 어머니의 혼을 담고 있는 은행나무가 가끔 슬피 우는데

곡을 하듯 슬피 우는 은행나무의 울음은 인근의 마을사람들도 듣고 함께 울게 할 만큼

그 슬픔의 흐느낌이 애절하다고 한다.

높이 솟은 은행나무의 몸에는 눈물이 흘러내린 흔적인 듯 한 고랑이 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연수사 대웅전(演水寺 大雄殿)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지붕으로서

1960년 중창. 2외출목에 살미첨살을 붙여놓았으며, 곱게 단청이 되어있고

외벽에는 심우도가 그려져 있으며 자연석 축대를 쌓은 후에 인조석으로 기단을 한 다음

둥근 다듬돌 주초석 위에 배흘림기둥을 세웠고 정면 어칸 기둥에는 위용있는 용두를 조각했다.

정면 어칸에는 4분합 빗살무늬 문을 달아 넓게 만들었고, 양쪽 협칸은 2분합 빗살무늬 문을 달아 놓았다.

불단은 연꽃 무늬가 새겨져 있고, 코끼리상과 사자상이 조각되어 있으며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정면 오른쪽에는 지장보살, 왼쪽에는 관세음 보살이 봉안되어 있으며

그 양옆으로 16나한상도 봉안되어 있고 삼존불은 토불로 조선초기의 불상으로 추측되고 있다.

목이 짧고 굵으며 법의가 양쪽 어깨를 덮고 있는데 모두 비슷한 얼굴표정을 하고 있다.

불화로는 삼존불 뒤에 후불탱을, 좌우에 지장탱과 관세음보살탱을 봉안하고 있고

좌측벽에 신장탱이 있다.

 

자료 인터넷사전 및 거창군 홈페이지

한국 향토문화 전자대사전 ,전통사찰관광정보, 문화재청, 홈페이지 자료

카페 블로그 지역주민 및 사찰종무소스님 인터뷰등 참고함.

연수사 대웅전(演水寺 大雄殿)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지붕으로서

1960년 중창. 2외출목에 살미첨살을 붙여놓았으며, 곱게 단청이 되어있고

외벽에는 심우도가 그려져 있으며 자연석 축대를 쌓은 후에 인조석으로 기단을 한 다음

둥근 다듬돌 주초석 위에 배흘림기둥을 세웠고 정면 어칸 기둥에는 위용있는 용두를 조각했다.

정면 어칸에는 4분합 빗살무늬 문을 달아 넓게 만들었고, 양쪽 협칸은 2분합 빗살무늬 문을 달아 놓았다.

불단은 연꽃 무늬가 새겨져 있고, 코끼리상과 사자상이 조각되어 있으며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정면 오른쪽에는 지장보살, 왼쪽에는 관세음 보살이 봉안되어 있으며

그 양옆으로 16나한상도 봉안되어 있고 삼존불은 토불로 조선초기의 불상으로 추측되고 있다.

목이 짧고 굵으며 법의가 양쪽 어깨를 덮고 있는데 모두 비슷한 얼굴표정을 하고 있다.

불화로는 삼존불 뒤에 후불탱을, 좌우에 지장탱과 관세음보살탱을 봉안하고 있고

좌측벽에 신장탱이 있다.

 

자료 인터넷사전 및 거창군 홈페이지

한국 향토문화 전자대사전 ,전통사찰관광정보, 문화재청, 홈페이지 자료

카페 블로그 지역주민 및 사찰종무소스님 인터뷰등 참고함.

우선 안의면에서 육십령으로 향하는 26번 국도를 타면 숨돌릴 틈없이 각종 풍광들이 행인들의 시선을 한껏 유혹한다. 이러한 유혹에 도취돼 가는 듯 4km가량을 오르면 농월정 계곡에 도착한다.

 

1 농월정
농월정(弄月亭)은 수많은 반석들로 가득차 있다. 이들 수많은 너럭바위 위를 혹은 옆을 쉴 새 없이 흐르는 투명한 물....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조선 선조때 문과에 급제 예조참판을 지냈으며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진주대첩시 분전 장렬히 전사한 이 고장 출신 지족당 박명부 선생이 머물면서 시회를 열기도 하고 세월을 낚기도 했다는 곳이다.
농월정 정자는 후세 사람들이 선생을 기리기 위하여 지은 정자인데 이름 그대로 달을 희롱한다는 뜻으로 우리 조상들의 풍류에 대한 면모를 가히 짐작할 수 있는 곳 이기도 하다
농월정은 그 경관이 너무나 뛰어나 지금은 국민관광단지로 지정이 되어 날로 늘어나는 탐방객들의 편리 도모를 위하여 군에서 개발하고 있는 곳이다

농월정의 윗부분에는 창인 청소년 수련원 이 있는데 년중 각 지역에서 청소년들의 화림동 계곡탐방과 정신 수련으로 붐빈다.

수련원의 옆에는 황암사 라는 사당이 있는데 이는 정유재란시 황석산 의 산성에서 왜군과 격전을 벌이다 장렬히 순직한 인근의 주민들과 관군들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되었던 사당을 함양군에서 2001년도에 복원한 것으로 저절로 우리 조상들의 순국정신에 머리가 숙여지는곳이다

농월정 에서 2km 정도를 가면 서하면 호성마을의경모정 이 나온다
경모정 은 고려 개국공신 배현경의 후손들이 1978년도에 건립한 정자로서 소와 어우러진 주변의 넓은 암반들로서 많은 행락객들이 쉬어 가는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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