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허준박물관, 궁산소악루, 양천향교,(사진)

사공(최명규) 2024. 8. 14. 17:40
728x90

사진으로 ㅆ는 후기글

구암 허준(1537~1615) 선생을
기리고자 개관한 공립박물관입니다.

허준박물관은 우리나라의 대표 의학자인 허준 선생의 학문적 업적과 생애를 널리 기리고자, 허준 선생이 태어나시고 돌아가신 곳인 서울 강서구에 2005년 설립되었습니다. 대표 저서인 <동의보감>은 단독 의서로서는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고, 뒤이어 국보 제31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허준박물관에서는 허준 선생의 각종 저서를 비롯한 한의서, 내의원과 한의원, 의약기 등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약재를 싸 보고 나의 건강 상태를 알아보는 등의 다양한 체험도 할 수 있습니다. <동의보감> 속 약초 120여 종을 심어 놓은 약초원은 훌륭한 자연체험학습장 역할을 하고 있으며, 옥상정원은 서울시 전망 좋은 곳 중의 하나로 선정되었습니다.

허준박물관은 유물 수집, 전시, 교육, 체험 등을 통해 유익한 지식의 터전이자 다시 찾고 싶은 흥미로운 복합문화공간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허준박물관 관장 김충배 [강서구청 홈페지에서]

동의보감》(東醫寶鑑)은 허준(1539∼1615)이 선조의 명을 받아 중국과 한국의 의학 서적(한의학)을 하나로 모은 백과사전으로서, 1596년(선조 29)부터 편찬하여 1610년(광해 2)에 완성된 의학서이다.[1] 당시 의학을 집대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2]

허준이 직접 간행에 관여하여 나온 동의보감의 어제본은 국립중앙도서관과 한국학중앙연구원에 소장 중으로, 각각 국보 319호와 319-2호로 지정되었으며,[3] 2009년 7월 31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다.[위키백과에서]

『동의보감(東醫寶鑑)』이라는 말은 ‘동양 의학의 이론과 실제’를 뜻하며, 1613년 우리나라에서 편찬된 의학지식과 치료법에 관한 백과사전적 의서이다. 왕명에 따라 의학 전문가들과 문인들의 협력 아래 허준(許浚, 1546~1615)이 편찬하였다. 국가적 차원에서 다양한 의학 지식을 종합하였고, 일반 백성을 위한 혁신적인 공공 의료 사업을 수립하고 실행한 것이다.

의학적 측면에서 『동의보감』은 동아시아에서 2,000년 동안 축적해 온 의학 이론을 집대성하여 의학 지식과 임상 경험을 하나의 전집으로 통합하는 데 성공하였다. 현대 의학 이론에 비견되는 지식을 담은 이 책은 동아시아와 그 너머 세계의 의학 발전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의료 제도와 관련해서는 19세기까지 사실상 전례가 없는 개념이었던 ‘예방 의학’과 ‘국가에 의한 공공 의료’라는 이상을 만들어 냄으로써 동아시아의 의학 지식과 기술의 발달을 대변하며, 나아가 세계의 의학과 문화에 남긴 발자취이다. 그러므로 『동의보감』의 의의와 중요성은 세계의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다.

1) 『동의보감』은 의학 원리와 실천에 관한 최초의 종합 서적으로, 공공 의료와 예방 의학의 이상을 선포한 국가의 혁신적인 지시에 따라 편찬하여 전국에 보급되었다.

『동의보감』은 17세기에 벌써 국가가 공공 의료를 책임질 것을 선포하며 선구적 계획에 추진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국가가 제공하는 공공 의료 서비스의 개념은 서양의 경우 19세기에 와서야 도입된 것으로 생각된다. 국가가 나서서 이 책을 편찬한 이유의 하나는 일반 백성의 건강과 안녕에 대한 책임감이었으며, 그것은 이 기념비적인 의서를 편찬하라고 했던 왕명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그 결과 백과사전과 같은 이 의서는 전문화된 의학 지식과 기술뿐만 아니라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초와 쉬운 말로 풀어쓴 간단한 치료법을 다루고 있다. 당시 한자는 상류층들만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교육을 받지 못한 평민들도 쉽게 읽고 사용할 수 있도록 책의 일부에서는 한자와 함께 한글을 사용하였다. 19세기 이전에 왕실이나 귀족보다도 평민의 건강을 위해 국가적으로 몰두한 이 같은 편찬사업은 사실상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2) 『동의보감』은 2,000년 동안 이론과 경험을 통해 축적해 온 다양한 의학 지식을 모아 하나의 전집에 방대한 양의 요법을 종합하였다.

동아시아에서는 오랫동안 치료와 관찰의 경험으로 축적된 지식과 인간 및 자연에 관한 관조에다 이론적인 원리를 효과적으로 결합한 의학이 등장하고 발달하였다.

16세기까지 축적되어 온 의학적 지식과 기술을, 『동의보감』은 17세기 초에 이 종류의 다른 어떤 의서보다 더 독창적 방식으로 통합하였다. 이런 이유로 『동의보감』은 그 후 동아시아 전통 의학의 모범이 되었다. 이 지역에서 의학 지식과 기술을 보존하고 전파하려는 노력은 새로운 책을 편찬하기보다는 이 책을 재인쇄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동의보감』이 지난 400년 동안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의 여러 지역에서 40회 이상 재인쇄되었다는 사실이 그 분명한 증거이다.

3) 『동의보감』은 ‘양생(養生)’의 원칙을 바탕으로 의학에서 예방의 중요성을 전면적으로 인식한 세계 최초의 의학 서적이다. 그 원칙은 체계적으로 의료에 통합되었으며, 정부 기관에 의해 『동의보감』을 대량으로 간행 및 보급함으로써 실제적인 양생법을 전파시켰다.

양생의 철학은 감정과 욕구를 다스리는 데 덧붙여 생활을 자연의 변화에 맞춤으로써 정신과 몸의 에너지 소모를 최소한으로 줄여 개인이 건강을 유지하면서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 철학에서는 인간의 질병이 단지 신체적 원인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요인과 사회적·정신적 요인이 복잡하게 작용한 결과라고 본다. 이런 추론을 바탕으로 『동의보감』은 건강과 질병의 문제를 다음 3가지 관점에서 탐구한다.

– 건강과 질병을 단순한 인과관계의 문제로 보는 기계론적 접근이 아닌 전체론적 관점.
– 인간의 건강과 질병이 사회와 밀접하게 연관된다는 사회 의학적 관점.
– 생물학적 의학이 아직도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예방 의학적 관점. 『동의보감』의 예방 의학 철학은 현대 의학이 그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보다 400년이나 앞서 이 관점을 구현하였다.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한 건강의 정의, 즉 ‘신체적 측면뿐만 아니라 정신적·사회적으로도 좋은 상태라야 진정으로 건강한 것’임을 17세기에 벌써 깨달은 『동의보감』의 의학적 선견지명은 세계 의학사적으로 중요하다.

결론적으로 동양 의학의 구현이라는 의미의 『동의보감』은 동양의 곳곳에서 2,000년 동안 축적된 의학 이론을 일관된 체계로 편찬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실생활의 의학에 예방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였으며, 국가에 의한 공공 의료의 개념을 발전시켰다. 하나의 전서에 의학 지식과 기술을 집약한 이 서적은 전례가 없는 것으로서 이전에는 들어 본 적 없는 새로운 형태의 의학 시대를 연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건강에 관해 제기되는 문제를 극복하고, 오래되었으나 아주 새로운 길을 현대 의학에게 가르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유네스코와 유산 홈페지에서]

사정상 건물 복도만 촬영했음

소악루는 서울특별시 강서구 가양동 8의 성산 양천향교 뒤 언덕에 있는 정자이다. 원래 조선 18세기에 이유가 중국의 호남성의 명승지 악양루를 본떠 만든 누정으로 강서구 가양동 산4번지 성산 동쪽 기슭에 있었다. 이 누정은 당대에 풍류객의 요지로서 이름을 날렸으며, 많은 문객과 화가들이 작품을 남겼다. 대표적인 시서화의 화합으로 시인 이병연과 화가 정선의 작품을 통해 소악루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정선의 「소악루도」를 통해 1994년에 현재의 위치에 소악루를 복원하였다.

정선 소악후월 소악루(사진출처:한국데이터진흥원)

소악루(小岳樓)는 서울특별시 강서구 가양동 8의 성산 양천향교 뒤 언덕에 있는 정자이다. 원래 조선 18세기에 건립된 누정으로 처음에 강서구 가양동 산4번지 성산 동쪽 기슭에 있었다. 1994년 6월 25일 새로 옮겨 지으면서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소악루는 조선 후기 문신 이유(李渘:1675∼1753)가 지은 정자이다. 이유는 본관이 전주(全州)로, 자는 중구(仲久), 호는 소악루(小岳樓)·호소와(號笑窩)이다. 정종의 제4왕자 선성군(宣城君) 이무생(李茂生)의 9세손으로, 이유의 증조부 이명운(李命運:1583~?)이 1613년(광해군 5)에 광해군이 인목대비(仁穆大妃)를 폐위하려 하자 벼슬을 그만두고 양천현 현내면 고양리 한강 기슭으로 이거해 살게 되었다. 이후 그의 후손들이 양천(陽川:옛 이름은 파릉(巴陵), 현 서울특별시 강서구 가양동 궁산)에 세거하게 되었다. 1732년(영조 8) 장릉참봉(莊陵參奉)에 제수되었으며 이후 감찰·금부도사를 역임했다. 1735년∼1738년에는 동복(同福:현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 현감(縣監)을 지냈다. 1738년에 양천으로 귀향하여 죽을 때까지 살았다.

『양천군읍지』에는 이유가 동복현감을 그만두고 1738년 양천으로 돌아온 뒤에 소악루를 건립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가 1732년경에 지은 기행가사 「사군별곡(四郡別曲)」에서 파강(巴江)의 소악루 일어옹(一漁翁)이 장릉참봉으로 부임하게 된 경위를 밝히고 있어, 장릉참봉 부임 이전에 소악루가 건립되었음을 알 수가 있다. 따라서 소악루는 1732년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소악루는 소악양루(小岳陽樓)의 준말로 작은 악양루라는 뜻이다. 원래 악양루는 중국 호남성의 상강도(湘江道) 악양현(岳陽縣)의 현성(縣城) 서문(西門)의 문루(門樓) 이름으로, 이곳에 오르면 전면에 동정호(洞庭湖)가 펼쳐져 있어 경치가 무척 아름다웠다고 한다. 이곳의 빼어난 경치를 배경으로 천하의 시인들이 수많은 시를 남겼다고 한다. 그 중 두보(杜甫:712~770)도 「등악양루[登岳陽樓]」라는 유명한 시를 남겨 놓았는데, 다음과 같다.[역사문화유산 홈페지에사]

양천향교(陽川鄕校)는 서울특별시 강서구 가양동에 있는 향교이다. 1990년 6월 18일 서울특별시의 기념물 제8호 양천향교터로 지정되었다.

조선 태종 11년(1411년)에 만들어졌으며, 현재 서울에 남아있는 유일한 향교이다. 이름 때문에 양천구에 위치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으나, 실제로는 강서구 가양동에 위치하고 있다. 인근에 위치한 서울 지하철 9호선 양천향교역 역시 이 곳의 이름을 따서 제정되었다.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양천향교는 조선 태종 11년(1411)에 처음 지었으며, 최근인 1981년에 전면 복원하였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로는 제사 공간인 대성전, 교육 기능을 수행하는 강당인 명륜당,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서재, 내삼문, 외삼문 등이다. 대성전의 안쪽에는 공자를 중심으로 그의 제자들과 중국과 우리나라의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양천향교는 전국 234개 향교 중 서울에 있는 유일한 향교이다.[위키백과에서]

양천향교 홈페이지를 찾아주신 유림여러분과 지역주민, 유교에 관심이 많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지금은 미디어 시대로 양천향교 또한 여러분과의 소통을 홈페이지를 통해 하고자 금번 기존의 홈페이를 전면 개편하였습니다. 이제 양천향교 홈페이지를 여러분과의 소통의 창구로 활용 하고자합니다.

양천향교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유교의 교리의 전파 및 예절,인성, 도덕 교육을 통해 현대사회의 일워으로 살아가는데 보탬이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그동안 소극적으로 진행되던 모든 프로그램을 홈페이지를 통해 적극적으로 운영하고자 합니다

양천향교를 소개하자면

양천향교는 태종 11년(1411년)에 유학을 토대로 건립됐으며 1963년 경기도 김포군 가양리에서 서울특별시로 편입되어 서울에 남아있는 유일한 향교입니다.

양천향교가 위치한 곳은 고구려 시대 재차파의현, 고려에는 공암현 등으로 불렸습니다. 고려 충선왕이 1311년 이곳을 양천현으로 명명하여 조선조 말까지 이어졌으며 현청, 객사, 향교가 근거리에 위치하여 양천읍치가 완성된 곳입니다. 특히 양천향교 주소지인 강서구 가양동은 양천현의 중심지였습니다. 과거 일제 강점기 시절 일제의 압박 속에서도 양천향교는 제향을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성전에는 공자님을 비롯해 4성위와 송조4현, 아국18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에 석전을 봉행하고 초하루 보름 삭망례를 올리고 있습니다.

양천향교는 2016년부터 문화관광부 및 성균관, 서울시, 강서구청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국가 시책에 적극호응하는 교육을 실시하고있으며 양천향교만의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성공적으로 윤영하고 있읍나다.

그동안 홍보가 미흡하여 참여의사를 가지고계신분들 에게 기회를 못드린 점 매우 죄송하게 생각하며 2024년부터는 적극적인 홍보로 관심있는 많은 분들에게 기회를 드리고자 합니다.

 

양천향교의 교육은 성인, 청소년교육 및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고 현재 운영중인 성인강좌의 질을 향상하여 수준 높은 강좌를 개설 운영 하고자합니다.

양천향교는 언제든 교육을 담당할 30여 명의 전문 강사진이 구성되어있으며 또한 생활예절교육을 기본으로 3D프린터를 이용한 문화재 모형제작, 드론 항공촬영, 조선수학의 비밀 등 관내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입니다.

또한 양천향교 600년사 발간, 양천향교 문화재 등록, 양천향교 역사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으며 보유 중인 연수원을 활성화해 양천향교의 위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양천향교 홈페이를 찾으신 분들께 다음의 글귀를 소개하고자합니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 「克念作聖(극념작성)」, ‘나쁜 생각을 이기고 성인의 뜻을 이어가자’ 또, 「衆心成成(중심성성)」, ‘뭇 사람들의 마음이 모이면 成(성)을 이룬다는 뜻으로 여러사람의 마음이 하나로 단결하면 견고한 성처럼 굳어진다’는 구절을 기억하셨으면 합니다.

 

양천향교 전교 배상  [양천향교 홈페지에서]

편집을 마치며

참으로 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집을 나서기가 망스려지는 것도 사실이다, 누군가가 부추기는 바람에 신도림역에서 만나 강서구를 둘러보기로 한다, 그 중에 허준 박물관, 궁산,양천향교, 그 외에도 둘러 볼곳이 있었으나, 너무더위 축소해서 일정을 종료한다, 허준 박물관에서는 관람 내용을 세밀하게 기록하고 싶었는데 사진을 찍지말라는 바람에 본대로 전할 수 없어 아쉽다, 따거운 했볕을 받으며 걷다가 궁산 둘레길에 덜어서니 시원함과 풀내음이 한여름 임을 일깨원 준다, 소악루에서 강건너 북한산 까지 선인들의 발자취를 확인하고 웅산 정상에 오른다, 제초작업 기계 소리가 요란하고, 여러분이 땀을 쏫고 있어 미안한 마음으로 조용히 둘러보고 하산한다, 향교를 둘러보고 시원한 물을 준비해 둔 것을 발견한다, 마음끝 물울 마시고 아무도 없는데도 이렇게 훈훈하고 고마운 온기가 느껴진다,베레에 깊은 감사를 하며 향교의 홍살문을 나선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