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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누리길 11코스 임진 적벽길 (역도보)

사공(최명규) 2024. 2. 10. 22:06

변경된 코스 ; 북삼교를 건너지 않고 진상리쪽 강변을 걸어 임진교를 건넌다

연천역에서 55변 미니뻐스로 선곡리 마을회관앞에 내려 군남땜으로 간다,지난번 12코스를 끝낼때 차시간 때문에 못가본 홍수조절지 전망대에 올라 땜의 전경을 스켓취한다,아직은 겨울 잠을 자고 있는 땜은 얼어 있어 쓸쓸하기만 하다, 그 풍경을 다 돌아보고 하류를 따라 걷는다,원 코스는 북삼교를 건너 허브빌리지를 지나 고성산 보루를 걸어 임진물 새롬렌드를 지나 주상절리로 이어지는데 새로운 코스는 북삼교를 건너지 않고 강변으로 계속 걷다가 임진교를 건너 합류하는 조금은 완만한 길이다,

주상절리 주차장쪽에는 대대적인 관광지 조상공사로 길 왜엔 다 파헤처젖다, 완공 후를 기대해 보며 그 길을 지나 당포성에 오른다, 여기도 많이 변했다, 달도떠 았고 해도 떠 있고 당포성의 상징 꼭대기 나무도 많이 자라 있고 오르는계단, 전망대도 데크로 변해있다, 그리고 숭의전지로 가는데 지친상태로 약간의 산길은 힘이 든다, 그렇게 도착한 숭의전지에 했볕이 내려앉아 사진찍기 최적이다, 역으로걷는 묘미가 아닐까 한다,[편집자 주]

군남홍수조절지 또는 군남댐 한탄강 합류점 약 12km 상류의 임진강 본류에 위치한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건설된 홍수조절 전용 단일목적댐이다. 2006년 10월 착공되어 2013년 12월 완공되었다. 콘크리트 중력댐으로 댐 규모는 높이 26m, 길이 658m이다.[위키백과에서]

군남 홍수 조절지

임진강유역은 1996년부터 1998년까지 연속적인 게릴라성 집중호우로 유역 내의 경기도 파주시, 양주시, 동두천시, 포천시, 연천군과 강원도 철원군 일대에 사망 및 실종 116명, 이재민 3만 1439명, 재산피해 9006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수해가 발생했다. 2002년 3월 건설교통부는 2008년까지 총 1조 6180억원을 투자하는 ‘임진강수계 수해방지 종합대책’을 최종 확정하였으며, 대책으로 군남홍수조절지, 한탄강댐, 천변저류지 등을 건설하여 홍수량을 조절하고 배수펌프장을 신설하여 홍수피해를 경감하는 계획이었다.[위키백과에서]

나무위에 있는 차에서 던저버린 듯한 쓰레기 범인???을 찾습니다

한탄강 주상절리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는 합수머리(도감포)에서부터 북쪽으로 임진강을 거슬러 마치 병풍을 쳐 놓은 것 같은 아름다운 수직의 주상절리가 수 킬로미터에 걸쳐 발달해 있는 국내에서도 유일한 곳입니다. 북한 평강군 오리산과 680m 고지에서 분출한 용암은 옛 한탄강의 낮은 대지를 메우며 철원-포천-연천 일대에 넓은 용암대지를 형성하였고 임진강을 만나 임진강 상류쪽으로 역류하면서 현무암층을 만들었습니다. 화산활동이 끝난 후 용암대지가 강의 침식을 받게 되자 강을 따라 기하학적인 형태의 현무암 주상절리가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절리는 암석의 표면에 발달하는 좁은 틈(혹은 금)을 말하는데 침식을 받게 되면 이 틈이 벌어지면서 암석이 쪼개지게 됩니다. 주상절리는 긴 통모양의 절리를 일컫는 말로 대개 현무암에서 가장 잘 발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무암은 용암이 굳을 때 발생하는 수축작용으로 인해 중심점을 따라 사각 혹은 육각형 모양으로 수직의 절리가 발달하게 되는데, 침식을 받게 되면 육각형 모양의 돌기둥이 떨어져 나가면서 아름다운 주상절리 절벽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가을이면 주상절리의 절벽이 담쟁이와 돌단풍이 물들고 석양빛에 더욱 붉게 보여 적벽이라 부르기도 합니다.[우키백과에서]

연천 당포성(漣川 堂浦城)은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동이리에 있는 삼국시대의 성곽이다. 2003년 4월 21일 경기도의 기념물 제192호로 지정되었다가, 2006년 1월 2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468호로 승격 지정되었다.[위키백과에서]

조선시대 각종 지리지에 당포성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으나 허목의 『기언별집(記言別集)』에 “마전 앞의 언덕 강벽 위에 옛 진루가 있었는데 그 위에 총사(叢祠)가 있고, 그 앞의 나루를 당포라고 한다. 큰 우물이 흘러 진로가 소통된다.”라고 당포성에 대한 기록이 전한다. 그 후 1995년부터 2003년 사이 지표조사 및 발굴조사가 이루어지면서 고구려토기 일부가 발견되는 등 고구려를 중심으로 한 삼국시대 성으로 추측된다.

당포성은 현재 전곡읍의 서북쪽 임진강 북안과 그 지류에 형성된 천연 절벽을 이용하여 축조한 평지성이다. 서쪽 부분이 뾰족한 모양인 삼각형 형태로 이러한 구조 때문에 가로막아 쌓은 동쪽 성벽은 매우 높게 구축되어 있으며 단애지대를 따라 구축된 남·북 성벽은 낮게 축조되었다. 성의 전체적인 형태가 주변에 위치한 은대리성이나 호로고루와 매우 흡사하며 특히 축조방식은 호로고루와 매우 밀접하다. 서쪽 끝에서 동벽까지의 길이가 200m이며, 동벽의 길이는 50m, 전체둘레는 약 450m정도이다. 현재 잔존 성벽은 동벽 6m, 단면 기저부 39m정도이며 성내부로의 출입 때문에 동벽의 남단은 성벽이 일부 파괴되어 출입로가 만들어졌고, 북단의 경우에는 참호 건설로 인하여 파괴되어 있는 상태이다.

연천당포성은 연천호로고루연천은대리성과 함께 임진강과 한탄강이 지류와 만나 형성하는 삼각형의 대지위에 조성된 독특한 강안평지성(江岸平地城)으로 임진강이 국경하천역할을 했던 삼국시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학술적으로 가치가 높은 귀중한 문화유적이다.[위키백과에서]

연천 숭의전지(漣川 崇義殿址)는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아미리에 있는, 숭의전이 있던 자리이다. 숭의전은 연천군 미산면 아미리에 있었으며, 조선시대에 고려 태조를 비롯한 7왕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내던 사당이다. 숭의전이 있던 자리가 1971년 12월 28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223호로 지정되었다.[위키백과에서]

조선시대에 고려 태조를 비롯한 7왕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내던 숭의전이 있던 자리이다.

태조 이성계는 1397년에 고려 태조 왕건의 전각을 세웠고 정종 원년(1399)에는 태조 외에 고려의 혜종, 성종, 현종, 문종, 원종(충경왕), 충렬왕, 공민왕의 제사를 지냈다. 그후 세종 5년(1423), 문종 2년(1452)에 고쳐 지었다. 문종 때는 전대의 왕조를 예우하여 ‘숭의전’이라 이름짓고, 고려왕조 4왕인 태조, 현종, 문종, 원종의 위패를 모시고 고려의 충신 15명을 함께 제사지내게 하였다.[위키백과에서]

연천 숭의전지(漣川 崇義殿址)는 사적 제223호로 소재지는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숭의전로 382-27이다.

숭의전(崇義殿)은 조선시대에 고려 태조(太祖)를 비롯한 7왕의 신위(神位)를 봉안(奉安)하여 제사 지내던 사당(祠堂)이었다.
구전에 의하면 태조 이성계가 등극하자 고려왕조의 종묘사직을 없앨 생각으로 고려왕의 위패를 배에 실어 강물에 띄웠더니, 배는 물에 떠내려 가지 않고 안하(岸下)에서 움지이지 않으므로 왕씨 자손이 남몰래 위패를 거두어 이 곳에 묘를 짓고 이를 봉하였다고 전한다. 후일 이 사실을 안 이성계는 태조 6년(1397)에 연천군 미산면에 고려태조 왕건의 묘전(廟殿)을 세웠고, 정종(定宗) 원년(1399)에는 태조 외에 고려의 혜종, 정종, 광종, 경종, 성종, 목종, 현종의 7왕을 제사 지냈으며, 세종 5년(1423), 문종 2년(1452)에 중건했다. 이후에 역대군왕이 수리하고 왕건 태조를 봉사하였고, 제5대 문종(文宗)조 때는 전조(前朝)를 예수하여 숭의전이라 이름지었고, 고려조 4왕인 태조, 현종, 문종, 원종의 4왕의 위패를 모시고 이화 함께 고려조의 충신 정몽주 선생 외 열다섯분을 제사 지내도록 하였다. 이 숭의전의 관리도 고려왕족의 후손에 맡겼는데, 이것은 조선왕조가 고려유민을 무마하여 왕족의 불평을 없애기 위한 하나의 방도였다. 아울러 선조(宣祖)때는 여조왕씨(麗朝王氏) 후예로 참봉(參奉)을 제수(除授)하여 전각의 수호와 향사를 보게 하였다.

일제강점기에도 조선총독부가 이를 계승하였던 곳인데, 6·25전쟁으로 전각(殿閣)이 소실되었다. 1971년 12월 28일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사적 제223호로 지정되었다. 1973년에는 왕씨 후손이 정전을 복구했고, 국비 및 지방보조로 1975년 2월에는 배신청(陪臣廳)(13평)을 1976년 1월에는 이안청(移安廳)(8.7평)을 1977년 2월에는 삼문(三門)을 신축하였다.
이 숭의전 일대는 임진강안, 단애절벽상 경승지로서, 노수가 울창하여 전각을 싸고 각하(脚下) 일대는 만경창파(萬頃蒼波) 회변유수(回邊幽水)한 별천지이며, 여조(麗朝)의 왕씨 문중들이 완강하게 이씨조선을 거부하였고, 갖가지 설움을 언누르면서 전조(前朝)를 흠모한 충절이 깃들여진 곳 이다.

(자료출처 : 『문화재대관-사적편(개정판,下)』)

52번 미니뻐스를 30분 정도 기다린다,?  정시(현장 정유장에 부착되 있음)에 도착해 동두천 중앙역 3번출구앞에 내린다,

편집을 마치며

평화누리길, 역으로 걷기 두번쩨, 11코스 임진 적벽길을 연산동님과 함께 걸었다, 오랬만에 걷는 길이라 생소 했고 그보다는 변경된 코스라, 더 그랬다, 미세먼지가 있긴 했지만 맑고 포근한 날씨 속에 연산동님의 자세한 길 안내와 해설속에 힘은 들었지만 무사히 맞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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