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세상/산행 사진

동해 바다 1박 2일 2 [낙산사 홍련암]

사공(최명규) 2011. 7. 12. 16:19

 의상대를 지나 대웅전으로---,

 

때 맞춰 의상대 족에 했볕이 비춰 멋진 풍경을 담을 수 있었고 헹글라이드 까지 더해주니

 예상치 못한 작품을 만들 수 가 있었다

 

하늘을 나는 사람들은 어디서 왔는지 해변 상공을 멋대로 돌아 다닌다

의상대를 지나 반대쪽에서 했볕을 등지고 바라본 의상대는 천년 노송과 바다와 어우러저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오랜세월 저런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아 있을 풍경을

이 순간 깨끝한 모습으로 볼 수 있어서 행운이라는 생각이다

출발 할때는 이번 여행에서는 비 때문에 카메라를 꺼내지도 못할 수 도있다는 불길한 생각을

했었지만 현제로는 그런일은 없을 것 같다

 

 

 

 

 

 

 

 

 

 

 

 

 

 

 

 

 

 

 

 

 

홍련암

낙산사의 산내암자의 홍련암(紅蓮庵)은 의상대 북쪽300m 지점에 있다. 이 홍련암은 의상대사가 본절인 낙산사를 창건하기 앞서

관음보살의 진신(眞身)을 친견한 장소로서, 또한 관음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석굴 안에서 기도하던 바로 그 장소로서

낙산사의 모태가 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관음보살을 친견하기 위하여 당시 신라의 서울인 경주(慶州)에서부터 멀리 이 곳까지 온 의상대사는 이곳에서 푸른 새〔靑鳥〕를 만났는데,

새가 석굴 속으로 들어가므로 이상히 여겨 굴 앞에서 밤낮으로 7일 동안 기도를 했다. 이윽고 7일 후 바다 위에 붉은 연꽃, 곧 홍련이 솟아나더니

그 위에 관음보살이 나타나 의상대사는 드디어 친견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곳에 암자를 세우고 홍련암이라고 이름 짓고, 푸른 새가 사라진 굴을 관음굴(觀音窟)이라 불렀다고 한다.

한편 또다른 창건설화로서는,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의 진신을 친견한 자리에 대나무가 솟았는데, 그 곳에 불전(佛殿)을 지으니 곧 홍련암이라고도 전한다.

두 이야기 전부 의상대사가 지극한 정성으로 기도를 올려 관음보살을 친견했다는 내용에서는 일치하며, 부분적으로 파랑새·대나무·석굴 등이

 첨가된 것이므로 결국 하나의 이야기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홍련암의 연혁은 주로 『건봉사급건봉사말사사적』에 의거해 살펴볼 수 있다. 그 책에 따르면 의상대사의 창건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1619년(광해군 11)에 중건되었고, 1752년(영조 28)에 덕린(德麟)스님이 중수했다. 이어서 1797년(정조 21)에 혜민(惠旻)스님 중건, 그리고

1869년(고종 6)에 의연(義演)스님이 중건했으며 1911년에 흥운(興雲)·청호(晴湖) 두 스님이 중수했다고 한다.
1869년의 중건은 1866년의 홍수로 무너졌기 때문이며, 1911년의 중수는 1908년(융희 2)에 절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연혁이 비교적 짧고 통일신라·고려시대의 연혁이 거의 전하지 않는 점이 아쉽지만, 남겨진 기록을 통해서나마 그런대로 낙산사와 더불어 꾸준히

법등을 이어왔음을 알 수 있다. 절의 당우로는 관음전과 요사가 있다.

전각이나 불상·불화등에서 오래된 것은 없으나 홍련암 전체가 현재 강원도문화재자료 제36호로 지정되어 있다.
전에는 동암 도봉(東庵道峰)스님이 1962년에 중건한 봉향각(奉香閣)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관음전 등은 1975년의 중창 때 지어졌으며, 안에 봉안된 탱화 역시 같은 해에 조성되었다.

관음전 앞면과 옆면 각 3칸씩인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로서 바닷가 암석굴(巖石窟) 위에 자리잡고 있다.

이 전각은 법당 가운데쯤에 조그맣게 마루를 뚫어 놓아 그곳으로 출렁이는 바닷물을 실감나게 볼 수 있도록 만든 것이 특이하다.

절 근처 바닷가에는 보기 드문 석간수(石澗水)가 있는데, 이 샘은 원효스님이 양양에 있는 영혈사(靈穴寺) 샘물을 석장(錫杖)에 담아 끌어 왔다는

설화가 전한다.

이 샘물은 지금은 보타전 앞으로 옮겨져 있다. [낙산사 홈페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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