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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옛길 의주길 제3길 쌍미륵길(2부 윤관장군 묘)

사공(최명규) 2023. 2. 19. 23:25

멀어지면서 다시 줌인

윤관(尹瓘, 1040년 7월 12일 (음력 6월 1일) ~ 1111년 6월 15일 (음력 5월 8일[1]))은 고려 중기의 문신·군인이다. 숙종, 예종  여진족 토벌에 출정하였다. 본관은 파평, 자는 동현(同玄)[2], 시호는 문숙(文肅)이다. 처음 시호는 문경(文敬)이었으나 뒤에 문숙(文肅)으로 개시되었다. 파평 윤씨의 시조 삼한공신(三韓功臣) '윤신달'(尹莘達)의 4대손으로, 아버지 윤집형(尹執衡)은 검교소부소감(檢校少府少監)을 지냈다. 어머니에 대한 기록은 없다. 여진족을 몰아내고 북진 정책을 완수한 공으로 영평(파평)백에 봉해져 후손들이 본관을 파평으로 하였다.

숙종 때 2차 여진족 토벌 당시는 원수로 출정하였으나 실패, 강화회담을 하고 되돌아왔다. 이후 특수 부대 별무반을 창설하여 오연총과 함께 병력을 훈련, 1107년(예종 2년) 3차 토벌 때 대원수에 임명되어 별무반을 이끌고 여진 정벌군의 원수(元帥)가 되어 부원수 오연총(吳延寵)과 척준경, 왕자지, 오연총 등과 함께 17만 대군을 거느리고 여진족을 토벌한 뒤, 북방에 9성을 쌓고, 여진족이 재침략하자 이를 진압하고 1108년(예종 3년) 개선하였다. 여진족을 북방으로 몰아내고 동북 9성을 공략하였으며 북방을 방비하는데 기여하였다.

그러나 여진족의 동북9성 반환 요청이 있자 그는 반대하였으나 고려 조정은 화의론을 주장하여 9성을 되돌려주었고, 1109년 길주성에서의 패전을 이유로 한때 공신호를 박탈당하고 해임당하였으나 예종의 특별 배려로 복직하였다. 파평 윤씨의 중시조이다. 아들은 윤언이이고, 충혜왕의 장인 윤계종은 윤관의 7대손이었다. 남원 윤씨 함안 윤씨 역시 그의 후손이었다. 폐비 윤씨는 윤관의 11대손이 된다.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은 수태보 문하시중에 이르렀으며, 군인으로 알려져 있으나 문과에 급제한 문신이었다. 경기도 파주 출신.후손 지금 살아있는 후손은 윤상운 윤지혁이 있다[위키백과에서]

파주 윤관장군묘(坡州 尹瓘將軍墓)는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분수리에 있는 고려시대의 무덤이다. 1988년 2월 27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323호로 지정되었다.

윤관은 1040년 음력 6월 1일 경기도 파주군 파평현(坡平縣)에서 검교소부소감(檢校少府少監) 윤집형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윤관의 아버지 윤집형은 삼한공신(三韓功臣) 윤신달의 증손자로 벼슬은 검교소부소감을 지냈다.[3] 그의 가계는 고려 삼한공신 윤신달의 후손으로 윤신달 이전의 가계는 미상이다. 그가 공신이 되고 명장으로 이름을 날렸기에 그를 중심으로 고조부까지만 기록된 것으로 전한다.

부인 경원 이씨는 이성간(李成幹)의 딸로, 슬하에 윤언이(尹彦頤)·윤언순(尹彦純)·윤언식(尹彦植)·윤언이(尹彦頤)·윤언민(尹彦旼)을 두었으며, 이 중 두 사람은 승려가 되었다.

윤언이는 『고려사(高麗史)』에 열전이 수록되었고, 윤언순은 예종(睿宗) 때 시어사(侍御史)를 거쳐 남원부사(南原府使)에 이르렀으며, 윤언식은 타고난 자질이 고상하고 우아하여 빈객을 좋아하였는데, 벼슬은 수사공 좌복야(守司空 左僕射)에 이르렀다. 윤언민은 다른 사람보다 총명하고 서화(書晝)를 잘하였으며, 인종(仁宗) 때에 상식봉어(尙食奉御)가 되었다. 이와 같이 그의 가문은 상당히 번성하여, 이후 왕실과 혼인을 하는 등 당대의 명문으로 거듭났다.[위키백과에서]

윤관장군 묘 (사적 제323호)

고려중기 문신인 윤관(?~1111)은 문무를 겸비한 고려의 공신으로 1104년(숙종 9)에 여진 정벌을 위해 별무반을 편성하고 1107년(예종 2)에 여진을 정벌한 후 9성을 쌓았습니다. 한때 윤관장군의 무덤은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으나, 조선 1747년(영조 23) 후손들이 지금의 자리임을 주장하여 1764년(영조 40)에 공인되었습니다. 특히 이곳은 우리나라의 유명한 명당으로 파평 윤씨와 청송 심씨 간에 400년간 지속된 산송 분쟁으로 유명합니다. 이 분쟁은 2008년 심지원 묘를 비롯한 청송 심씨 묘 19기 모두를 이전하면서 조상묘 다툼이 해결되었습니다.[경기옛길 홈에서]

후기

총거리 19,7km/6시간34분, 오늘의 성적표다, 오후5시가 다 되어 신상5리 정류장에서 뻐스에 오른다, 다른 때보다 사진을 많이 찍었다, 쌍미륵도,윤관장군 묘도 신기하고 새롭고 놀라웠다, 미륵앞에 쓰러진 소나무도 의문이고 장군 묘가 이토록 웅장한것도 처음 보는 풍경이라, 빠듯한 시간을 쪼개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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